같은 듯 다른 고민

20대 후반 여자 크리스천의 요즘 화두

얼마 전 모임에 갔었다. 평생 만날 기회가 없던 사람들인데 지역 청년들을 위한 프로젝트를 참여해서, 그 일환으로 3개월간 2-3번 정도 함께 모여서 시간을 보낼 기회가 있었다. 프로젝트에 참가한 인원은 총 80여 명 정도인데, 각 10명씩 그룹으로 나눠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집단상담이나 캠프 등을 통해 취업 준비로 지친 청년들에게 쉼을 준다는 취지의 프로젝트였는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신기하게도 내가 속한 그룹에는 나까지 포함해서 총 3명의 크리스천이 있었다. 처음부터 '저 교회 다녀요.'라고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은근히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었는데, 역시나 크리스천이 맞았다. 내가 속한 그룹 10명 중 남자는 한 명이었지만, 크리스천이었던 세 명은 모두 여자였다. 이런 현상조차 요즘 교회의 성비를 반영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나를 포함한 두 명의 여자 크리스천 중 한 명은 27살, 나머지 한 명은 29살이었다. 20대 중후반이라는 점에서 나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또래였다. 모든 사람들과 한 번씩은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나는 특히 이 두 사람과 좀 더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아무래도 이유는, 내가 작은 교회를 다니고 있다 보니, 또래 크리스천은 어떤지, 게다가 나와 같은 여자 크리스천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컸기 때문이다. 

그렇게 먼저 이야기를 나누게 된 27살 언니는 내가 크리스천이라고 했을 때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언니 역시 모태신앙인이었는데, 주변 친구들이 모두 교회를 다니지 않아서 같이 신앙생활을 하는 친구가 없다고 했다. 나는 감사하게도 몇 년 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난 신앙 친구가 있었다. 하지만 나 역시 그 친구를 만나기 전, 또래 없이 혼자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건, 꽤 외로운 일임을 경험했었기 때문에 언니의 마음이 어떨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언니는 요즘 들어 더욱 전도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건 나 역시 공감되는 점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한 명 있었지만, 그 친구의 단 한걸음도 교회로 초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언니 역시 친한 친구들임에도 친구들 앞에서 교회 이야기를 꺼내는 게 유독 불편하고, 그 친구들도 불편하게 여긴다고 했다. 내 친구는 내가 교회 이야기를 꺼내도 불편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교회에 전혀 관심이 없고, 그 무관심이 긍정적 무관심이 아닌, 부정적 무관심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내 앞에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이 친구의 부정적 무관심 속에는 '신이 있다는 걸 어느 정도는 알겠어. 하지만 신을 믿는다 해도 교회는 안 가.'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그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교회 다니는 사람들끼리 으레 그러듯이 어느 교회를 다니는지 묻게 되었고, 나는 우리 교회를 말하며 덧붙여 설명했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버스가 한 대만 다니는 시골에 있고, 성도님들도 10명 내외이며, 청년부도 나 한 사람뿐이라고 말하면서, 나는 목회자 자녀임을 자연스럽게 먼저 밝혔다. 그러자 언니는 되게 놀라는 눈치였는데, 힘들겠다고 나를 갑자기 위로하면서 깊은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언니는 4년 동안 만나는 남자 친구가 있었다. 그러나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이었고, 그냥 그 정도이면 좋겠지만 부모님이 교회에서 상처를 받고 떠났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남자 친구가 교회를 싫어하고 있었다. 

언니는 그 남자 친구를 진심으로 좋아했고, 그 남자 친구도 언니를 좋아했다. 이제껏 만난 사람들 중에서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주고, 배려해준다고도 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영적인 부분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요즘 들어 더욱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언니가 이제 27살이니 결혼을 생각할 나이인데, 자기가 결혼을 못하는 것보다, 남자 친구가 자신 때문에 결혼을 못할까 봐 걱정이라는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이, 스스로의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언니가 처음 남자 친구를 만날 때, 그가 크리스천이 아닌 걸 알고 만났는지 궁금했다. 언니는 그 사실을 모르고 만나긴 했지만, 소개팅을 해서 만난 건 맞다고 말했다. 

이 부분에서 조금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평소 나 같은 경우 소개팅을 하라고 해도, 상대방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예 만날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소개팅을 해보지 않았고, 별로 하고 싶지도 않지만 말이다. 

여기서 또 크리스천이 아닌 사람들은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아니, 크리스천이어도 의문을 가질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어떻게 사람을 가려서 만나?'라는 생각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언니 역시 그런 경우였다고 생각한다. 믿는 사람을 골라서 만나려니, 믿는 사람이 없고, 그렇다고 남자를 안 만날 수 없으니, 한번 만나보면서 전도하자, 라는 생각으로 소개팅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믿지 않는 배우자를 만나서 결혼하는 건, 아프리카나 그 외의 오지에서 선교사역을 한다고 여기면 된다는 크리스천들 사이에 통용되는 말이 있다. 그 정도로 크리스천들 사이에서 불신자와의 만남과 결혼은 항상 큰 화두이자 문제다. 어쨌든 언니는 지금 교회를 싫어하는 남자 친구와 만나는 중이었고, 만남을 이어가야 할지, 정리를 해야 할지, 라는 생각 사이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언니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로 헤어지자, 라고 말한다면, 안 그래도 교회에 상처가 있는 사람에게 또다시 상처를 줄 것 같아서 가장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언니도 남자 친구를 전도해보려고, 주일날 교회에 앉아만 있어달라,라고 부탁해봤다고 한다. 그러나 남자 친구가 '네가 그렇게 원한다면 교회에 가겠다, 그러나 믿는 걸 기대하지 말라. 난 진짜 앉아만 있을 거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는 더 이상 교회에 대한 말을 꺼내지 못했다며 언니의 이야기가 끝이 났다.


두 번째로 이야기를 나누게 된 29살 언니는 비슷한 듯 다른 상황이었다. 언니는 몇 년째 만남을 이어가는 남자 친구가 있었다. 이번에는 남자 친구를 제외한 나머지 남자친구의 가족들은 믿음이 아주 좋은 상황이었다. 결혼하기 전, 시댁 식구들이 어떤 분들인지 아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 언니는, 이 남자 친구도 사랑하고, 남자 친구의 부모님도 좋은 분임을 알았기 때문에 결혼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신앙이 좋은 부모님이 있다 해도, 구원은 개인의 문제이기 때문에, 부모님만 바라보며 믿지 않는 남자친구와 결혼하는 건 망설여졌다. 그래서 언니는 요즘 들어 하루 1시간씩 꼬박 기도를 한다고 했다. 남자 친구와 시간을 한 달 정도 가져보기로 했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은 매일 기도하며 하나님과 더 깊이 이야기를 나눠볼 거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 응답이 헤어짐이면 헤어짐, 이어 짐이면 남자 친구의 교회 출석이 되지 않을까,라고 말을 마무리했다. 

물론 교회에 나와서 앉아만 있는다고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게 아니지만, 그래도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앉아 있기만 한다면 어떻게든 하나님의 말씀이 귓가라도 스칠 테니, 그럴 때 복음이 들어가길 언니는 혹시, 또는 그저 조금만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두 사람과의 만남은 새로운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사실 나는 과연 언제쯤 저런 고민을 하게 될지 궁금하다. 그래도 항상 주위에서 많이 들어왔던 크리스천의 결혼 문제이기 때문에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되어있던 관심을 옮겨서 객관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성경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신 말씀에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고, 이 나라를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게 다스리라,라고 나와있기 때문에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원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 역시 당연히 서로 사랑하는 남녀의 연애와 결혼을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찬성하는 걸 넘어서 보기 좋다고 생각하고, 또 결혼도 사랑하는 사람만 있다면 언제든 할 준비가 되어있다. 

문제는 누구와 결혼하냐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믿는 사람과 자연스럽게 만나서 결혼하게 된다면 참 바람직하고 좋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나, 그러지 못하는 경우와 상황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믿는 사람을 골라서 만나자니 그런 사람은 주위에 잘 없고, 그렇다고 안 믿는 사람을 전도하자니 힘들고, 그렇다면 독신으로 살아야 하나 싶으면 그것도 아니고, 믿지 않는 사람과 만나서 믿을 때까지 결혼을 미뤄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특히 여자 크리스천이 남자 크리스천과 만남이 힘든 이유는 일단 교회 내의 남녀 성비가 불균형하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에 우리 교회만 그런 줄 알았다. 교회의 주일학교 학생들이 죄다 남학생이었기에. 아무리 내 동생들이 남자이고, 동생들의 친구들이 오는 거라고 하지만 단 한 명의 여학생도 없어서 우리 교회만 그런가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29살 언니의 말을 들어보니, 언니가 다니는 교회 역시 유 초중등부까지는 남녀가 비슷한 비율로 있거나 남학생이 조금 더 많았다면, 고등부부터 위로 올라갈수록 여자의 비율이 급격히 높아진다고 말했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냥 예상해보건대, 남자들은 여자보다 하나님을 믿지 못할 상황을 많이 마주치는 건 아닐까. 그러니까 뿌리 깊은 가부장제의 문화 속에서, 남자들은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 되는 게 아닌, 내가 나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 많았기 때문에, 은연중에 그런 문화가 자신의 신념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보다는 스스로를 의지하여, 내 힘으로 나를, 배우자를,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아닐까.


아무튼 결론은 크리스천 또래 남자 사람을 찾아기도, 만나기도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 역시 내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같은 하나님을 믿더라도, 신앙생활은 생활습관처럼 어느 정도 결이 비슷해야 함께할 수 있다. 그런데 내 또래의 크리스천 남자를 만나본 적이 별로 없지만, 나와 비슷한 생각을 품는 사람을 본 적도 없어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연애에 대해 기대를 닫고 살고 있다. 

그러면 이미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는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연애를 해본 적도 없고, 요즘 상황을 모르는 것도 아니라서 이런 고민을 들을 때에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참 곤란해지곤 한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며 고민하다가, 좀 더 생각을 해봤다. 전도가 어렵다는 것과, 또 믿는 친구나 애인을 만나기 힘들다는 것, 그리고 왜 우리는 당당히 교회 다녀요,라고 하지 못하고 숨어서 신앙생활을 하는 듯 느껴지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아마도 교회라는 이름으로 발생하는 수많은 사건, 사고, 범죄, 또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에서의 갈등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먼저 스스로 창피하게 여기기 때문에 말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런 문제들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그냥 교회를 다닐 뿐이지 진정한 크리스천이 아니야,라고 생각하지만, 은근히 같은 취급을 당할까 봐, 은연중에 숨기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교회를 다닌다고 말함으로써, 그것이 누군가 나를 판단하는 잣대나 선입견으로 적용되는 게 불편하니까 그럴 수도 있고. 

한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예수님을 믿으면 핍박을 받았던 성경 속의 어느 시대에 사는 것처럼, 지금 한국의 크리스천들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실을 알게 모르게 스스로 감추고, 그러므로 인해 세상에서 은근하게 설 자리를 잃어가는 중인 것 같다.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묵언의, 말없는 핍박들이 크리스천을, 교회를 향하여 만연해 있기 때문에. 

어쩌면 그런 핍박들은 우리가 자초한 것일지도 모른다.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 특이하게 보고, 그걸 넘어서 아예 싫어하는 요즘의 시선들은, 교회를 다니는 불특정 다수가,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각각 어떤 행동을 했느냐에 따른 결과를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지금 기독교인들이 비기독교인과의 결혼이나, 또 비기독교인 친구의 전도 문제에 대해 고민하면서도, 소극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결국은 '나의 잘못' 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교회로 데려올 수 있을까' 혹은 '어떻게 하면 믿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기 전에, '어떻게 하면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크리스천답게 살 수 있을까', 또는 '세상에서 교회에 다니는 것이 숨겨질 일이거나, 부끄러워할 일이 아닐 수 있도록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라는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정리하자면, 지금 현재 예수님을 믿지 않는 친구나 혹은 애인을 곁에 둔 사람이라면 이 사람을 어떻게 교회에 다니게 할까?라는 고민의 답을 구하기 보다, 어떻게 하면 내가 더욱 예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로 바르게 살 수 있을까?라는 고민의 답을 구해야 하지 않을까? 

그럴 때에 자연스럽게 교회를 싫어하게 된 사람들도, 다시 자연스럽게 교회를 좋아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예수님이 가장 낮고 작은 말구유에 오신 것처럼, 언제나 선한 영향력은 가장 작은 것부터 시작되어 퍼져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나부터라도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사소한 사랑을 나누는 행동이 무엇일지 고민해봐야겠다.



글 | 이희라(huirah@kakao.com)
예수님을 믿는 마음 외에 가진 게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장 큰 것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굳이 생각해보면 맛있는 음식, 가만히 있는 것, 말하기, 쓰기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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