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속 여성돋보기(14) - 다윗 왕의 아내, 미갈의 최후를 아시나요?

다윗의 첫 번째 아내이자 사울 왕의 딸 미갈, 부유한 지주의 아내였던 아비가일, 그리고 다윗의 충신 우리야의 아내였던 솔로몬의 모친 밧세바다. 이들 중 비극적인 주인공처럼 보이는 첫 번째 아내 미갈, 그녀와 다윗의 관계는 어땠을까. ..

구약성경 속 여성돋보기(14) 

다윗 왕의 아내, 미갈의 최후를 아시나요? 

다윗은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었다. 그의 통치 기록은 구약의 사무엘서, 열왕기서, 역대기서에 걸쳐 나타난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이상적인 왕으로 평가받는 다윗의 성공적인 왕의 궤적은 그의 아내들에 의해 지원되고 강화되었다. 그런데 다윗의 여성들과의 관계는 미심쩍고 의외적인 구석이 있다. 그에게는 여덟 명의 아내와 여러 명의 첩들이 있었다. 여러 처첩을 둔 것은 의로운 지도자보다는 제왕적 권력자로 보이게 한다. 그의 권력 주변부에는 주목받는 세 명의 여성들이 있다. 다윗의 첫 번째 아내이자 사울 왕의 딸 미갈, 부유한 지주의 아내였던 아비가일, 그리고 다윗의 충신 우리야의 아내였던 솔로몬의 모친 밧세바다. 이들 중 비극적인 주인공처럼 보이는 첫 번째 아내 미갈, 그녀와 다윗의 관계는 어땠을까. 

젊은 영웅 다윗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에게 사랑을 받았지만(사무엘상 16:21-22), 백성들 사이에서 다윗을 향한 찬사와 드높아진 인기는 사울을 괴롭혔다(18:7). 사울이 다윗의 지혜로움을 보고 군대장관으로 삼았어도(18:5),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노래하며 춤추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사울을 불쾌하게 만들었다(18:8). 다윗의 대중적 인기는 사울에게 두려움이 되었고(8:12), 이즈음 사울은 다윗에게 자기의 큰 딸 메랍을 아내로 주겠다며 자기를 위해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라고 제안한다(8:17). 다윗을 사위로 맞아들여 이익을 챙기려는 사울의 셈법이었다. 

그러나 메랍은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었고(18:19), 때마침 사울은 작은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사울은 미갈을 이용해 다윗을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18:20-21). 사울은 신하들을 통해 다윗에게 블레셋 남자들의 포피 100개를 지참금 명목으로 가져오면 사위 삼겠노라는 뜻을 전한다. 다윗은 자기 부하들과 블레셋 사람 2백 명을 죽이고 왕의 사위가 된다(19:25-27). 오호라, 사울은 왕권을 위협하는 다윗이 성공하지 못하고 전투에서 죽기를 기대했건만(18:21). 그러나 예언자 사무엘은 이미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비밀리에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울 준비를 마친 상황이었다(16:12-13). 

긴장된 상황, 사울의 딸 미갈은 다윗을 사랑했지만 딸의 마음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남자들의 정치적 동기만 중요할 뿐이다. 남자들은 정치적 야망에 따라 움직이고, 여자는 개인적 수준에서 반응하는 정형화된 이야기다. 이 상황에서 다윗이 미갈을 사랑한다면 사울은 훨씬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겠지만, 미갈을 향한 다윗의 감정은 생략되었다. 다윗은 사울의 사위가 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미갈이 다윗을 사랑했다는 것은 반복되지만(18:20, 28), 이야기 흐름은 다윗의 지혜로움과 사울의 조여 오는 두려움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그럼에도 미갈이 다윗을 향한 사랑을 알리는데 주저함이 없었던 것 같다(18:20, 28). 남자가 아내를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미갈이 먼저 남편 다윗을 선택한 셈이었다. 물론 왕의 딸이라는 신분의 특수성이 작용한다. 문제는 다윗이 미갈을 사랑해서 성사된 결혼이 아니었다. “다윗이 왕의 사위 되는 것을 좋게 여기므로...자기 부하들과 함께 가서 블레셋 사람 이백 명을 죽였다”(18:26)라는 보고처럼 다윗과 미갈의 관계는 다윗의 실리를 챙기는 동기로 맺어진다. 

이즈음 사울은 아들 요나단마저 다윗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요나단이 다윗을 옹호하며 왕의 그릇된 행동을 지적하니(19:1-4) 사울은 견딜 수 없었다. 끝내 사울은 자기를 위해 음악을 연주하는 다윗을 향해 단창을 던지기까지 했다(19:9). 사울을 피해 집으로 돌아온 다윗은 미갈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도피할 수 있었다(19:11-16). 그녀는 남편 다윗이 아파서 침대에 누워있는 것처럼 속였고, 창문 밖으로 다윗을 탈출시켰다. 미갈은 다윗을 잡으려는 사울의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했고, 아버지 사울은 몸소 다윗이 없는 침상을 확인하고 딸의 속임을 추궁한다. 이때 미갈은 다윗의 말을 사울에게 그대로 옮겼다. “나를 놓아 가게 하라 어찌하여 나로 너를 죽이게 하겠느냐”(19:17) 강압적인 다윗의 말이 사실인지 미갈의 꾸며낸 말인지는 명확치 않다. 남편을 살리고 아버지를 반역한 미갈이 궁에 홀로 남았을 뿐이다.

이후 사울의 끈질긴 추적과 다윗의 도피생활이 계속되면서 억울한 사람들이 다윗에게 모여들었고, 다윗은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어(22:2) 세력을 키웠다. 그 사이 다윗은 위기에 처한 그일라 주민을 구하기도 했다(23:1-14). 엔게디 동굴에서 다윗은 자신을 추적하는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살려준다(24장). 다윗이 여러 곳을 다니며 다양한 활동을 하는 동안 이스라엘의 킹메이커였던 예언자 사무엘이 죽었다(25:1). 

몇 년의 시간이 흘렀을까. 다윗은 단 한 번도 아내 미갈을 찾지 않았다. 그는 마온에 사는 부유한 지주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과 결혼한다(25:42). 이후 아히노암을 아내로 맞아들였다(25:42). 그래서였을까. 사울은 미갈을 다른 남자와 결혼시켰다(25:44). 딸을 향한 사울의 안타까움이었을까. 글쎄다. 지금까지 사울의 행동을 보면 다윗과 미갈의 혼인관계를 통한 왕위계승을 차단하려는 심중이지 않았겠나.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사울과 요나단은 전쟁터에서 죽었다(31장). 다윗은 유다의 왕이 되었지만, 사울의 죽음이 당연하게 다윗을 왕으로 만들어주지는 않았다.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기는 했지만, 왕의 후계자로 자처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사울이 죽은 후 사울의 군대장관 아브넬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웠기 때문이다(사무엘하 2:8-10). 왕이 둘인 상황, 세력 갈등은 불가피했다. 때문에 이스라엘은 내란의 혼란 속에 있었다(2:12-3:5).

 그동안 다윗은 많은 아내들과 자녀들을 얻었다(3:2-5). 죽고 죽이는 혈투와 갈등을 덮고(3:6-4:12) 다윗이 왕위에 오르지만(5:1-10), 다윗은 사울 왕권 계승과 안정을 위해 치밀한 전략이 필요했다. 사울 왕을 배신하고 남편을 살렸던 아내 미갈은 다윗의 기억에서 사라졌었지만, 다윗은 왕권안정을 위해 미갈을 다시 데려와야 했다. 그는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미갈을 강제로 빼앗아 온다. 이때 미갈의 남편 발디엘이 울면서 미갈을 따라 나서는 슬픔이 묘사되지만(3:14-16) 미갈의 감정은 생략되었다. 미갈의 침묵은 아버지와 남편의 정치적 희생물이었다는 것을 또렷하게 반증한다. 

이후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오는 날, 다윗은 기뻐 춤추며 환호한다(6:14-15). 그러나 “사울의 딸 미갈”은 다윗의 춤추는 것을 보고 마음으로 그를 경멸했다(6:16). 여기서 미갈이 다윗의 아내로 불리지 않고 사울의 딸로 불린다. 미갈이 다윗을 사랑했다는(사무엘상 18:20) 감정표현 이후로 그녀의 감정이 사랑이 아닌 증오로 바뀐 것이다. 남편의 정치적 목적 때문에 다시 돌아오게 된 미갈의 상태를 엿보는 대목이다. 다윗은 백성들과 함께 제사를 드리고 한껏 백성들을 축복한 후 집에 돌아왔고,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을 맞이하면서 입을 열었다(6:20). 

“…오늘 이스라엘의 임금님이 건달패들이 맨살을 드러내고 춤을 추듯이, 신하들의 아내가 보는 앞에서 몸을 드러내며 춤을 추셨으니 임금님의 체통이 어떻게 되겠습니까?”(6:20, 새번역)

 이스라엘 왕의 태도에 항의하며 지적하는 미갈에게 다윗이 대답했다. 

“…내가 주님 앞에서 그렇게 춤을 추었소. 주님께서는 그대의 아버지와 그의 온 집안이 있는데도 그들을 마다하시고 나를 뽑으셔서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도록 통치자로 세워주셨소. 그러니 나는 주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소. 나는 언제나 주님 앞에서 기뻐하며 뛸 것이오, 내가 스스로를 보아도 천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그대가 말한 그 여자들은 나를 더욱더 존경할 것이오.”(6:21-22, 새번역) 

두 사람의 대화 후에 둘의 이야기는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자식을 낳지 못하였다”(6:23)라는 말로 마무리된다. 이것은 해석자들로 하여금 미갈의 자식 없음을 기름부음 받은 다윗을 대항한 벌이라며 쉬운 결론을 내리게 했고, 설교자들은 미갈의 행동을 비난하곤 했다. 그러나 구약에서 여성의 임신 여부는 여호와께 달린 것임을 명시한다(창세기 20:18; 29:31; 30:2, 22; 사무엘상 1:5, 6; 이사야66:9). 미갈에게는 사라, 레아와 라헬, 한나처럼 하나님이 임신을 못하게 하거나 태를 닫았다는 말이 없다. 사무엘서 저자는 미갈의 불임에 대한 책임소재를 모호하게 처리했다. 암암리에 여성억압구조를 드러내면서 남성중심의 이익을 폭로한 셈이다. 

남편 다윗이 화를 내며 분수를 지키라는 듯 날카로운 말이 오갔고, 이미 다윗은 여러 명의 처첩을 둔 상황이었다. 이후에 다윗이 미갈과 동거했거나 잠자리를 함께 했다는 말은 없다. 사울 집안과 다윗 집안의 불화를 쉽게 해결할 수 없었던 터에(3:1) 다윗 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사울 집안의 사람들은 제거되어야 했다. 이 권력다툼의 중심에서 다윗의 아내 미갈은 “사울의 딸 미갈”이었기에 다윗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담보물이요, 정치적 희생물이었다.


김순영(백석대학교 기독교전문대학원 Ph.D., 한영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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