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주 목사] 계시록에서 탈출하라

귀신 나오는 집과 요한계시록

귀신 나오는 집과 요한계시록
옛날 시골에는 ‘상여집’이라는 게 있었다. 동네에 초상이 나면 시체를 메고 가는 기구, 즉 상여를 마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작은 집이다. 이것은 으레 마을에서 떨어진, 후미진 산속이나 깊은 계곡에 두기 마련이다. 아이들은 상여집을 귀신이 사는 집으로 여기고 무서워했다. 거기에는 죽음의 음습한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고 무서운 혼령들의 이미지로 가득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신비한 비의가 그곳을 지배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두려움 때문에 그곳에 접근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어른이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죽음의 음습한 그림자 때문에 어른들도 상여집을 탐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계시록에 관한 한 한국 교회는 세대주의와 알레고리 해석에 크게 의존하였다. 계시록이 종말에 대한 영적 환상을 보여주는, 심판의 파국에 대한 종말론적 예언으로만 해석해왔던 것이다. 교회의 계시록에 대한 소극적 태도와 세대주의적 인식은 이단사설이 발아하고 성장할 수 있는 좋은 토양을 제공했다.요한계시록이 그렇다. 심판과 종말에 대한 비극적 비전과 기괴하고 초현실적인 그림언어들이 압도하는 계시록은 목사들을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 깔뱅은 주석을 쓰면서 계시록만을 쏙 빼놓고 썼다. 그 이유를 ‘너무 신비하고 오묘하여 자신이 다룰 수 없는 영역’이라고 했다. 깔뱅의 이 말은 이후 많은 신학자와 목사들이 계시록에 접근하는 것을 방해했다. ‘깔뱅 같은 대학자도 어려워한 텍스트를 감히 내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괜스레 잘못 접근했다가 문제나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심어준 것이다.

계시록과 이단사설
이단사설은 성경을 보는 관점이 왜곡될 때 나타난다. 성경을 근본주의 시각으로, 문자적으로만 보게 되면 메시지를 놓치게 된다. 성경은 문자가 아니라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맥락을 봐야 한다. 그 성경이 쓰인 시대적 상황과 문화적 코드, 저자와 그가 속한 역사적 맥락, 문학적 장치들을 함께 봐야 한다. 근대 이후 이른바 고등비평의 다양한 방법들이 등장했고 이를 통해 성경의 메시지를 제대로 읽으려는 시도가 있어왔다. 고등비평의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역사비평이 다. 성경이 쓰인 역사적 상황과 맥락을 통해 메시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계시록의 이단적 위험성으로부터 우리가 한 발 물러서서 메시지를 올바르고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비평을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

이미 서구 복음주의는 계시록을 역사비평으로 해석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있다. 그리하여 계시록은 황제숭배가 강요되고 헬레니즘의 문화가 교회에 침투하는 상황에서 교회를 수호하려는 보수적인 유대계 크리스천의 작품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고 있다. 그리하여 계시록에 나타난 비극적인 비전과 그로테스크한 그림언어들이 문학적 상징의 이면에 황제숭배와 헬레니즘 문화에 대한 저항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주저 없이 말하고 있다.

신뢰할 만한 주석들
이런 점에서 앵커바이블 주석서는 매우 신뢰할 만한 계시록 주석서를 발간했다. 앵커바이블 주석 시리즈 중 하나로 출판된 크레이그 R. 쾨스터의 <요한계시록Ⅰ,Ⅱ / CLC>가 그것이다. 신학생이나 설교자에게 좋은 주석서는 전쟁터에서 좋은 무기를 가진 군인과 같다. 우리나라의 대부분 설교자들은 주석적인 설교를 하지 않는다. 그러니 주석서를 잘 보지 않는다. 이것이 문제다. 좋은 주석서를 갖는 것은 올바른 신학을 위한 필수조건이며 정확한 메시지를 찾고 영향력 있는 설교를 할 수 있는 설교자의 중요한 덕목이다.

앵커바이블 시리즈 주석들은 낱권으로 번역되고 있다. 그 중 쾨스터의 <요한계시록Ⅰ,Ⅱ>는 손에 넣는 순간 한시도 내려놓을 수 없을 정도로 흡입력이 있는 주석서다. 대부분의 주석이 학술적인 용어와 지루할 정도로 늘어지는 장문의 언술 때문에 쉽게 읽히기 어려운데 반해 이 책은 정갈하고 단아한 문체로 핵심을 짚으며 마치 파도 타기를 하듯이 계시록의 역사적 상황과 문화적 맥락, 문학적 상징, 코드들을 유연하게 넘나들고 있다. 특히 서론에서 기독교 역사 2천 년 동안 계시록이 어떻게 해석되어 왔는지 해석의 역사를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쾨스터는 필요에 따라 다양한 고등비평 방법들을 동원하며 계시록 이해를 위한 지평을 열어준다. 총 1,600여 페이지 중 250여 페이지에 달하는 서론부문을 읽는 것만으로도 요한계시록의 전체를 조망하고 이해할 수 있는 눈이 열리게 된다.

신천지 때문에 교회들이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교인들에게 신천지를 무조건 배척하라고 가르치기보다 계시록을 강해하고 그들의 잘못된 성경해석을 지적해 주는 것으로 교회가 신천지에 대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창덕(한 권으로 끝내는 신천지 비판 / 새물결플러스)과 이필찬(신천지 요한계시록 해석 무엇이 문제인가? / 새물결플러스)의 책들이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계시록을 신학적으로 올바로 이해하기 위한, 똘똘한 주석서 한 권을 가져야 한다면 나는 단연 크레이그 R. 쾨스터의 <요한계시록Ⅰ,Ⅱ>를 추천하고 싶다. 주석서만으로 설교가 어렵다면 이광진 교수의 <요한계시록: 주석과 설교 가이드 / 대장간>을 추천한다. 하이델베르그의 베르거 교수에게서 계시록을 수학한 이광진 교수의 이 책은 본문 주석 다음에 한국 교회에서 설교할 수 있는 테마와 그 방법을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역사비평의 방법으로 주석을 하고 있지만 한국적 풍토에 맞는 보수적 설교 콘텐츠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보수적이고 공부하기 싫어하는 한국 목회자들이 쉽게 접근하여 깊이 있는 해석을 하고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하게 할 것이다.

이와 함께 그레고리 K. 비일의 요한계시록 주석(NIGTC-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 새물결플러스)도 참조할 만하다. 하지만 현란하게 펼쳐지는 다양한 학자들의 견해를 일일이 읽어 내려가야 하는 부담이 있는 책이다. 또 자끄 엘륄의 요한계시록 주석도 참조할 만 하지만 신학적인 지평에서보다 문학평론이나 철학적인 지평 위에 있는 책이다. 또 J. 넬슨 크레이빌의 <요한계시록의 비전 / CLC>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는 ‘제의신학’이라는 독특한 관점으로 계시록의 맥락을 황제숭배와 관련하여 해석한다.

부디 교회들이 요한계시록의 그로테스크한 환상과 세대주의적 망상에서 빠져나와 우리 시대에 필요한 메시지를 올바르게 해석하기를, 동시대의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서, 설교자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기도한다. 그래서 신천지 같은 이단세력과 천박하게 목청만 높이며 삿대질하지 말고 교회와 성도들을 건강한 설교로 인도하기를 소망한다.

교회들이여, 끈적거리고 질퍽거리는 계시록의 망상에서 탈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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